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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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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문화 글의 상세내용
제목 대천3동
구분 지명유래
내용 대천3동

1986년 1월 1일 대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생긴 행정동이다. 법정동인 화산동과 동대동을 합하여 대천에서 새롭게 발전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대신동이라고 하였다. `95년 대천시와 보령군의 통합으로 인하여 시의 명칭이 보령시로 됨에 따라 그동안 지명도가 높았던 대천이란 지명이 사라지게 되어 다수의 시민들이 아쉬움을 가지고 있어 시민들로부터 대천지명을 살리자는 여론이 조성되어 `99. 3. 15 대천지명찾기 운동 추진위원회로부터 동지역 주민 29,640명의 서명 및 날인을 받아 행정동의 명칭을 변경해 달라는 청원서가 접수되어, 이에 `1914년부터 대천이라 불려지던 옛 행정구역 명칭을 회복하여 주민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시키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함으로써 관광객의 이해을 돕기위해 보령시조례 제368호(`99.7.20)의거 대신동에서 대천3동 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음.

동대동(東垈洞)

본래 보령군 우라면(于羅面)의 지역으로서 한내(大川) 동쪽이 되므로 동대(東垈)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신리(平薪里), 시라동(侍郞洞)과 목충면(睦忠面)의 목장리(木場里)를 병합하여 동대리라 해서 대천읍(읍,시)에 편입되었고 `1986년 대천시 승격시 시에 속해있다`95년 대천시와 보령군의 통합으로 인하여 보령시로 되었음.
조선시대에 우라면 사무소가 있었음. 한자표기는 현재는 東垈洞(동대동)으로하나 과거에는 東臺里(동대리)로 표기 하기도 하였다.(興地圖書(홍지도서))

○ 가로배미 : 오랏 앞 구레답에 있던 논 이름.

○ 가막재 : 질편에서 시렁굴로 넘어가는 낮은 고개로 이 곳에서 까마귀가 울면 근동에서 초상이 난다고 한다.

○ 가재냇갈 : 작은 오랏 아래에 있는 냇물, 동대주공아파트 북쪽에서 흘러오는 냇물이다. 가재가 많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 개장굴 : 한내여중에서 질편 방앗간 쪽으로 내려오는 개울을 말한다. 윗개장굴 아랫개장굴로 나눈다. 옛날 이 곳은 나무가 우거져서 시내쪽에서 보면 이곳에 서낭에 불을 켜 놓은 것처럼 불이 여러개 있었는데 모두 개오지, 호랑이가 그랬다고 한다. 짐승 때문에 개장굴이라고 불렀다 한다. 또한 이곳에는 공동묘지 못지 않게 묘지가 많았다고 한다.

○ 검바위 : 두러미에 있는 고인돌로 두 개가 나란히 있으며 범바위라고도 한다. 옛날 이 근처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였으며 날이 어두워지면 호랑이가 이 바위 꼭대기에 않아 있기도 해서 혼자서는 다니기 어려웠다고 한다. 검바위는 곰바위라는 의미로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 공동묘지 : 송말림과 동박굴 사이에 있다. 일제시대에 설치된 공동묘지이다.

○ 관모배미 : 오랏 앞 구레답에 있던 논 이름.

○ 구레답 : 오랏 앞 들로 물이 넉넉하다는 뜻에서 구레답으로 부른다. 가뭄이 계속되어 다른 곳은 메밀을 심었어도 이 곳은 마르지 않았다.

○ 기우제터 : 한내여중 동쪽의 산 끝.

○ 깃대배미 : 오랏 앞 구레답에 있던 논 이름

○ 나무장터 : 현 대천천의 서쪽으로 대천 시가지와 연속도니 지역이다. 원래 이 곳은 대천천 안에 있던 섬으로 이 섬의 서쪽에 있던 내가 더 깊고 컸었다. 따라서 섬의 서쪽내를 경계로 했기 때문에 동대에 속하게 된 곳이다. 1970년대 초 나무장터 동쪽의 하천 바닥을 파서 서쪽 하천을 메웠기 때문에 시가지와 연속되게 되었다. 이 곳이 나무장터로 불리우게 된 이유는 과거 이 곳에 땔나무를 파는 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탄을 이용하기 전에는 집집마다 땔나무를 사용하게 되었고 시내 사람들은 모두 사서 쓰지 않으면 안되었었다. 그 당시에는 성주산에는 나무가 없어 멀리 성주면 심현동, 화장골, 지게골, 먹방, 심지어 무량사에까지 가서 나무를 해다 이 곳에 팔았다. 나무장이 섯던 자리는 현 동부파출소 앞 한일은행자리이다. 이때 거래한 나무는 장작, 솔가루, 삭쟁이, 솔가지, 등컬 등으로 저녁 때 해 온 나무는 새벽에 팔고, 오전에 한 나무는 저녁 때 내다 팔았다. 어떤 때는 밤11시까지도 팔리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 너분내 : 평섶 명암의 경계로 평지를 넓게 흘러서 너분내라 했다고 한다.

○ 당나부랭이 : 시렁굴에서 한내여중 앞 청지관쪽으로 넘어오는 길이다.

○ 데부뚝 : 가재 냇갈의 둑으로 홍수가 나면 자주 터져서 주변 논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 돈바탕 : 한내여중 동쪽 산 둥턱이다. 옛날 성두산에서 나무해 오다가 쉬면서 돈치기를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 동대동 1통 1반 : 동대동 178, 181-2, 190-1, 195-1, 301-3, 303-1, 304-3, 305, 319-3, 319-49, 331-4, 331-18, 348-2, 353, 574, 575-6, 575-14, 576-6, 672-18, 672-66, 683-1, 684, 995, 산13-2, 산15-1, 산21-7, 산21-19, 산23-1 일원

2반 : 동대동 156-11, 162, 164-3, 164-2, 169-2, 192, 194-2, 195-1, 202-1, 202-2, 274-7, 296-2, 301-1, 302, 314-2, 315, 316, 319-2, 319-87, 319-97, 320-1, 322-1, 323-8, 319-2, 319-3, 319-49, 319-96, 323-7, 331-4, 331-11, 331-18, 332-1, 336-1, 산13-2, 산19-39 일원

3반 : 동대동 11-5, 139-1, 140-1, 317, 319-42, 319-47, 319-97, 322-1, 323-1, 323-12, 324, 326, 331-21, 산4, 산5, 산6, 산8-3, 산13-2, 산15-1, 산38-1, 산40-1, 산40-2일원

4반 : 동대동 130, 220, 221-1, 231, 232, 233-2, 236, 237-1, 245-11, 248, 250, 250-1, 256-2, 256-4, 274-14, 275-1, 275-2, 290-2, 293-1, 2198, 299, 300, 302,- 314-1, 314-2, 315, 316, 317, 702-1, 704-2, 705-1, , 705-3, 983, 산1-10, 산1-13, 산3-2 일원

○ 동대동 2통 1반 : 동대동 8, 8-8, 8-12, 20, 74, 77-1, 120-1, 124-4, 125-, 136-3, 136-1, 136-4, 138-7, 141-11, 143, 144-4, 산17, 산20, 산42, 산44, 산46, 산46-1, 산47-1, 산48-1, 산48-2, 산48-5, 산48-6, 산114 일원
2반 : 동대동 15, 16, 30-1, 33-1, 34, 37-2, 39-2, 51, 61-5, 65-1, 75, 76-3, 77-3, 104-1, 105, 106-2, 107, 120, 121-1, 122-2, 124-5, 136-3, 136-8, 369-1, 381-10, 산31 일원

3반 : 동대동 30-2, 30-3, 30-5, 34, 37-2, 46-2, 48-1, 49-1, 51, 86-1, 87, 88-1, 88-2, 93-1, 98-, 98-2, 99, 100, 101, 106-2, 347, 347-11, 348-2, 350, 369-1, 369-4,-381-5, 381-8, 381-10, 388, 산21-19, 산21-21, 원

4반 : 동대동 339, 339-1, 339-2, 339-11, 340-5, 340-6, 340-14, 340-18, 340-
33, 340-35, 340-37, 340-3, 340-41, 340-47, 382-17, 382-19, 382-2, 382-34, 383, 403-3, 405, 406-15, 408, 산21-15 일원

○ 동대동 3통 1반 : 동대동 489-15, 489-16, 489-17, 489-18, 490-1, 490-3, 490-8, 490-9, 490-12, 490-13, 491-7, 493-2, 495-1, 500-1, 502-11, 502-13, 502-15, 565-1, 562-1, 566-6, 566-14, 569-1, 570-8, 570-10, 570-14, 572-1, 574-1, 574-4, 574-7, 574-10, 574-14 일원

2반 : 동대동 491-3, 494-1, 494-2, 510-1, 511-1, 512-1, 515, 524, 535, 548-1, 548-2, 550, 551-1, 552, 556, 561, 564, 603, 640, 1350~1706 일원

3반 : 동대동 455-1, 460-2, 460-3, 460-6, 460-7, 460-8, 461-1, 461-3, 461-7, 461-8, 462-2, 491-3, 509-1, 10-1, 512-1, 516, 516-1, 517, 519, 520, 523, 524, 525, 535, 1707~1769 일원

○ 동대동 4통 1반 : 동대동 384-3, 385-1, 387, 389-1, 389-2, 396-2, 407, 409-4, 410-4, 420-2, 421-2, 427, 428, 437-2, 438-1, 476-1, 476-7, 476-13, 477-6, 478-2, 479-2, 486, 487, 488-3, 488-4, 492-2, 430-5, 469-6, 471, 472 일원

2반 : 동대동 445-1, 446-1, 446-3, 452, 453-1, 453-4, 453-9, 454, 463, 463-1, 463-10, 464-4, 465-1, 468-2, 468-3, 469-2, 489-16, 489-19, 489-29, 489-54, 501-1, 502-2, 502-9, 502-11, 502-12, 506-2, 506-6, 506-9 일원

3반 : 동대동 425, 427, 432-9, 432-10, 432-11, 432-12, 432-13, 432-14, 432-15, 432-16, 436-6, 438-1, 438-2, 438-4, 438-5, 438-10, 438-11, 442-2, 442-3, 442-4, 443, 926, 1770~1108 일원

4반 : 동대동 910, 911-1, 912, 930, 931-2, 932-1, 932-2, 932-3, 932-4, 932-8, 933-5, 934-1, 937-1, 938-1, 941-1, 942, 943-1, 944-1, 945-1, 946-4, 968-1, 968-2, 969-4, 969-5, 969-6, 970, 970-1 일원

○ 동대동 5통 1반 : 동대동 209-1, 251-1, 286, 287, 288-1, 290-2, 635-1, 648, 649-1, 651-3, 654-1, 654-3, 654-11, 655-2, 666, 668-1, 680-5, 697-5, 699-3, 699-7, 704-2, 704-10, 705-3, 712-1, 713-8, 713-10, 715-1, 722-3, 723-10, 729 일원

2반 : 동대동 649, 650, 651-4, 653-6, 723-3, 725-1, 725-3, 725-5, 725-6, 725-9, 725-12, 726-1, 727-8, 727-9, 727-17, 727-23, 727-24, 728-4, 728-7, 728-8, 728-18, 729-6, 730-7, 730-10, 7007~1108 일원

3반 : 동대동 723-3, 732-4, 732-5, 725-1, 725-3, 725-5, 725-6, 725-7, 725-9, 725-12, 726, 727-7, 727-10, 727-14, 727-15, 727-17, 728-4, 728-6, 728-7, 728-8, 728-9, 728-10, 727-14, 727-15, 727-17, 728-4, 728-6, 728-7, 728-8, 728-9, 728-10, 728-17, 728-20, 728-21, 728-23, 728-24, 729-1, 729-2, 729-6, 729-21, 730-11, 997 일원

○ 동대동 6통 1반 : 동대동 738-1, 738-3, 738-7, 738-8, 738-9, 739, 739-9, 739-27, 739-44, 742-3, 743-3, 783-12, 783-13, 738-16, 739-1, 739-12, 739-14, 739-24, 739-43, 740-1, 740-2, 740-4, 740-5, 740-7, 743-3, 745-6 일원

2반 : 동대동 736-8, 736-15, 736-18, 736-20, 737-7, 737-9, 737-11, 738-2, 738-10, 738-11, 738-15, 738-17, 738-19, 738-21, 738-22, 739-6, 739-11, 745-2, 745-15, 751-2, 752-9, 752-10, 752-14, 1109~1169 일원

○ 동대동 7통 1반 : 동대동 747-1, 752-2, 752-8, 752-9 일원(국민주택 1,2,3동)

2반 : 동대동 732-13, 750, 752-1, 752-9(국민주택 5,6,7동)1170~1229 일원

3반 : 동대동 785-15, 807-1, 807-4, 807-6, 807-7, 807-9, 807-12, 807-13(국민주택 8동, 가,나,다동)1230~1260 일원

○ 동대동 8통 1반 : 동대동 804-1, 805, 805-1, 809-2, 809-6, 874-8, 874-28,
874-30, 892-4, 893-7, 894-5, 897-48, 1261~1348 일원

2반 : 동대동 799, 803, 804-1, 897-71, 908(유성빌라 가,나,다,라,마동) 일원

3반 : 동대동785-6, 808-1(보령맨션 가,나동)일원

○ 동대동 9통 1반 : 동대동 775-2, 775-3, 775-7, 775-10, 775-15, 775-16, 775-17, 775-18, 775-20, 775-27, 775-33, 813-1, 815-5, 815-11, 817-1, 818-16, 828-5, 832, 835-1, 835-4, 836-9, 838-1 일원

2반 : 동대동 770-1, 771-3, 773-13, 774-8, 775-24, 817-4, 817-6, 818-5, 818-7, 818-10, 818-13, 818-16, 820-3, 823-9, 824-9, 983-3, 983-5, 983-10, 983-12, 983-16, 983-17, 983-123 일원

3반 : 동대동 814-6, 815-9, 815-10, 816-3, 817-1, 817-3, 817-4, 817-6, 817-8, 818-16, 820-3, 823-8, 823-9, 823-12, 824-1, 824-6, 824-9, 824-10, 827, 828-4, 828-5 일원

4반 : 동대동 818-1, 8818-9, 820-8, 820-11, 823-5, 823-6, 823-16, 823-18, 823-21, 983-23, 983-26, 983-27, 983-31, 983-35, 983-36, 983-37, 983-38, 983-39, 983-96, 983-103일원

○ 동대동 10통1반 : 동대동 828-3, 828-6, 828-10, 828-11, 839-1, 846-1, 846-2, 847-3, 847-24, 848-1, 848-4, 848-5, 849-3, 850-2, 850-14, 850-15, 850-41, 850-43, 850-56 일원

2반 : 동대동 820-1, 821, 822-2, 822-3, 822-5, 822-6, 822-7, 822-8, 822-9, 828-2, 828-3, 849-2, 849-3, 850-1, 850-56, 983-41, 983-42, 983-44 일원

3반 : 동대동 821-2, 821-6, 983-48, 983-53, 983-54(현대상가, 구상가) 일원

○ 동대동 11통1반 : 동대동 858-1, 858-2, 859-2, 859-6, 859-8, 861-1, 861-3, 861-7, 862-1, 862-5, 862-6, 983-64, 983-65, 983-66, 983-69, 983-73, 983-79, 983-80, 983-82, 983-93, 983-97, 983-99, 983-100 일원

2반 : 동대동 835-2, 835-7, 837-1, 837-5, 839-2, 841, 841-1, 841-4, 843-2, 844-1, 850-2, 850-10, 850-20, 850-23, 850-33, 850-37, 852-2, 855-1, 855-2, 861-4, 862-6, 882-1, 885-2 일원

3반 : 동대동 835-7, 858-18, 878, 879-1, 879-2, 879-3, 879-5, 879-6, 879-8, 880-1, 880-2, 880-3, 880-4, 880-5, 882-1, 882-6, 885-12, 885-18, 887-4, 983-124 일원

○ 동대동 12통1반 : 동대동 927-1, 929-1, 930-1, 970-5, 973-2(동대주공아파트 101동)일원

2반 : 동대동 890-1, 973-1, 974(동대주공아파트 102동) 일원

3반 : 동대동 890-1, 890-2, 974(동대주공아파트 102동) 일원

4반 : 동대동 927-1, 974(동대주공아파트 104동) 일원

○ 동대동 13통1반 : 동대동 890-1, 890-2(동대주공아파트 105동)일원

2반 : 동대동 976, 983-125(동대주공아파트 106동)일원

3반 : 동대동 976, 983-125(동대주공아파트 107동)일원

4반 : 동대동 976, 978(동대주공아파트 108)일원

5반 : 동대동 418, 857-2, 962-18, 972-2, 972-4, 979-1(동대주공아파트 109동,
상가지역) 1870~1945 일원

○ 동대동 14통1반 : 동대동 415-1, 417, 977(동대주공아파트 110동) 일원

2반 : 동대동 417, 418, 976, 977(동대주공아파트 111동) 일원

3반 : 동대동 415-1, 417, 979-1(동대주공아파트 112동) 일원

4반 : 동대동 415-1, 417, 979-1(동대주공아파트 113동) 일원

○ 동대동 15통1반 : 동대동 414, 415-2, 416(동대주공아파트 114동) 일원

2반 : 동대동 416, 417,471-1(동대주공아파트 115동)일원

3반 : 동대동 413-1, 414, 979-2(동대주공아파트 116동) 일원

4반 : 동대동 413-1, 414, 972-2(동대주공아파트 117동) 일원

○ 동막골 : 원평 저수지 위 계곡

○ 동메산: 동대동의 가장 북쪽에 있는 둥그런 산이다. 옛 문헌에 나오는 東山里(동산리)는 바로 이 곳을 말한다. 산 꼭대기에는 토성이 있다고 하며 안터에서 내려오던 산줄기가 구슬처럼 뭉쳐 끊겨 구슬봉이라고도 한다.

○ 동산(東山) : 동메산의 한자식 표현.

○ 두 러 미 : 동메산 밑 마을이다. 원레 두러미는 산 밑을 말하였으나 지금은 산 전체
를 말하는 것으로도 사용한다.

○ 두발가지 등생이 : 광불사 동쪽 성주산 꼭대기로 두군데로 갈라지는 길이 붙여진 이름이다.

○ 망 암 : 광불사 동쪽 성주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이다.

○ 목장(木場) : 나무장터의 한자 표기이다. 1960년대 동대동의 4區(구)중 1區(구)였다.

○ 번 덕 지 : 오랏 윗뜸의 현 동대감리교회 자리로 이곳에는 큰 묘지가 있었는데 동네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다. 추석 때가 되면 이 곳에 씨름장이 섯는데 물아래 (새내) 물위(오랏)로 나누어 싸웠다고 한다.

○ 병 목 안 : 성주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골짜기가 병목처럼 좁아 붙여진 이름이다.

○ 부 두 막 : 성모병원 뒤쪽의 들. 대천농업고등하교 실습답이었다.

○ 사 당 골 : 한내여중 남쪽 골짜기.

○ 사태백이 : 진등산의 남쪽으로 1950~1960년대 나무가 없던 시절 사태가 나서 붉게 노출된 곳이라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 때는 남포 이어니재에서 보아도 붉게 보았다고 한다. 사방 사업으로 오리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였다.

○ 서낭댕이(대천고 옆) : 대천고등학교 북쪽 담장 옆에 있었다. 서낭에 팽나무가 서 있었고, 돌은 2트럭 정도가 쌓여 있었다. 대천에서 가장 큰 서낭으로 정월 초순의 밤에는 꽃밭 같았다고 한다. 서낭뒤에 상여집이 있었다.

○ 서낭댕이(명암입구) : 오랏에서 명암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있다. 신수(神樹)로는 팽나무가 서 있다. 오랏 사람들은 잘 이용하지 않았다. 돌 무더기는 없어지고 현재는 나무만 남아있다.

○ 서낭댕이 : 질편 새마을 회관 앞에 있었다. 지금도 神樹(신수)인 참나무가 남아 있는데 참나무의 밑둘레는 242cm에 이른다. 이 참나무는 옛날 양씨 할아버지가 심었는데 후손이 없어 이 참나무에도 상수리가 열리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도 상수리가 잘 열리지 않는다.

○ 성업사 洑(보) : 철교 위 현재의 洑(보) 자리에 있던 보. 일제시대 내항동 간척지를 성업사에서 만들고 이 곳에 보를 막아 물을 대었다. 보 입구에 궁촌과 내항동에 물대는 규약이 적힌 비가 있었으나 부러진채로 넘어져 있다가 해안도로 공사로 어딘가로 실려가 매립되었다.

○ 성주산(聖住山) : 대천시 동쪽에 있는 높은 산줄기를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옛날 숭암산(崇巖山)이라 불리다가 통일신라 시대 朗慧和尙(낭혜화상)이 성주사를 크게 일으킨 뒤로 성주산으로 불렸다. 성주산은 모두 중생대 퇴적층으로 되어 있어 무연탄, 청석(벼룻돌) 오석 등의 산출이 많다. 대천쪽에서 성주산으로 불리는 봉우리는 대천시 동대동, 보령군 성주면, 보령군 청라면의 경계 지역으로 515.0m이다.

○ 세 집 매 : 신설동 위쪽으로 대신동 사무소가 있는 곳이다. 과거에 집이 3채밖에 없어서 세집매라 하였다.

○ 속 벌 : 시렁굴 북쪽에 있는 돌. 속에 있는 평지라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 송말림 : 사태백이 옆에 있는 사으로 송씨네가 관리하는 산이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 쇠바탕 : 광불사와 병목안 고랑 사이, 나무해 오다 쉬는 곳이라는 의미의 쉴바탕에서 변하여 쇠바탕으로 부른다고 한다.

○ 쇠부리터 : 한내여중 동쪽 산 밑을 부르는 이름으로 주변에서 녹아 굳은 것 같은 돌이 많이 나와 부르는 이름이다. 과거 제철을 했다고 전해져 한국 선사문화 연구소 손보기 박사가 답사한 바 조선 시대의 도요지로 판명되었다. 도요지 벽을 쌓았던 흙이 열에 녹아 제철할 때 나온 것으로 잘못 알고 부르는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 숯 구 터 : 광불사 동쪽으로 옛날 숯가마가 있던 곳이다.

○ 쉴 바 탕 : 세집매의 별칭, 옛날 지게지고 성주에서 나무를 해 올 때 쉬었던 곳이라해서 쉴바탕이라고 부른다.

○ 시 렁 굴 : 질편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 벼슬아치인 侍郞(시랑)이 살았다하여 시렁굴이라 부른다고도 하는데 이것은 시렁굴의 한자식 표기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은 양씨, 박씨, 조씨 3성이 터잡은곳이다. 과거에는 물이 없어 하늘만 쳐다보던 곳인데 지금은 지하수를 개발해서 옥토가 되었다.

○ 시엉박골 : 독막골 남쪽 골짜기로 시엉이 많아서 붙인 이름이라고 하며 옛날 호랑이가 많아서 무서웠던 곳이라고 한다.

○ 신 설 동 : 새로 생긴 동네라 해서 붙인 이름이다. 원래 세집매의 3채밖에 없었으나 나무장터와 대천시가지 사이의 대천천을 매립하면서 하천부지에 집짓고 살던 사람들을 이주시켜 많은 집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지대가 낮아 1979년 수해에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 아 랫 뜸 : 큰 오랏의 서쪽

○ 엉더지기보 : 두러미 밑에 있던 洑(보)

○ 영 미 굴 :원평 저수지 밑의 들. 옛날에 가뭄이 들어도 이 곳에만 농사를 지을 수 있
어 시렁굴의 밥그릇이라고 했다.

○ 오 랏 : 동대동 남서쪽에 있는 큰 마을이다. 앞들(구레답)의 水利(수리)가 좋아 많은
인구를 부양한 듯 하다. 한자식 표기는 于羅(우라)라고 한 듯하며 옛날 보령현 于羅面(우라면)도 이곳의 지명을 딴 것으로 보인다. 청천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정자나무 위쪽은 모두 밭이었고 아래쪽은 모두 논이었다.
이 마을에는 예부터 두레가 성하였다. 두레를 할 때는 1주일 전에 언덕위에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 旗(기)를 세우고, 각 농가마다 논의 면적에 따라 돈을 내면 호미질 할 수 있는 장정 모두가 나와 논을 매었다. 이 때 만들어진 돈으로 칠월칠석에 놀곤 하였다. 궁촌 사람들이 이 곳에 논매러 올 때는 궁촌 두레기를 가져다가 오랏 두레기에 절하고 논을 매야 되었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경우는 싸움이 나곤 하였다.
정월 열 나흘에는 쥐불싸움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주로 궁촌 사람들 하고 싸웠다고 한다. 오랏 정자나무에는 옛날부터 제를 지냈다. 제일은 따로 없고 정초에 집집마다 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나무는 동대지구 구획정리 사업으로 나무 주위에 흙을 메꾸어 말라 죽었다.

○ 오랏말림 : 한내여중 동쪽 산으로 오랏 사람이 관리 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 오소리골 등생이 : 사당골 남쪽 명천동과의 경계

○ 원 평(元坪) : 1960년대 동대동을 元坪(원평), 平薪(평신), 大東(대동), 大場(대장)의 4區(구)로 나누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두러미, 시렁굴, 질편을 포함하는 지명이다. 원래 동대리 1번지가 이 곳이라 해서 元(원)자를 넣고 평평하고 질편을 의미하는 뜻에서 坪(평)자를 넣었다고 한다.

○ 윗가막재 : 평섶에서 시렁굴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 윗 뜸 : 큰 오랏의 동쪽

○ 작은오랏 : 오랏의 남쪽

○ 잿 돌 : 신설동과 질편 사이에 있는 들

○ 진등산 : 화산동과의 경계가 되는 산이다. 등같이 좀 높은 두두룩한 언덕으로 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 질 편 : 신설동과 시렁굴 사이에 있는 마을로 땅이 질고 평평해서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질편 근처의 논은 물이 화산동 절사래에서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가뭄 때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 곳은 비가 오면 질지만 가뭄때면 말할 수 없이 척박한 땅이었다. 주로 떼장밭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청라 방면으로 통하는 큰 길 가여서 길이 있는 쪽 이라는 의미로 질편으로 이름하지 않았나도 생각된다.

○ 큰 오랏 : 오랏의 북쪽

○ 평 섶 : 오랏 동쪽 마을로 많은 가옥이 밀집해 있고 땅이 평평하다. 옛날에는 솔밭이 아주 넓었었다고 한다.

○ 평 신(坪薪) : 평섶의 한자식 표기.

○ 평 신(坪薪) : 1960년대 동대리의 행정구 중 하나.

○ 평화촌 : 대천천 매립지에 있었던 저소득층의 주거지역을 일컬었던 지명이다. 모두 철거되고 신설도으로 이주하였다.

○ 한내 12간 돌다리 : 대천 철교위 약50m 상류에 있던 옛 다리로 이 다리를 통하여
남포현과 보령현이 이어졌다. 수청거리의 어떤 과부가 놓았다는 전설이 있고, 그 과부한테 제사지낸다고 풍물을 치고 놀기도 하였다.

화산동(花山洞)

본래 보령군 목충면(睦忠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산리(東山里), 괴동(槐洞), 소정리(昭亭里), 대곡리(大谷里), 화현리(花峴里)를 병합하여 화현(花峴)과 동산(東山)의 이름을 따서 화산리라 하여 대천읍(읍, 시)에 편입시켰다. 1986년 대천시 승격과 함께 화산동으로 부른다.
`95년 대천시와 보령군의 통합, 보령시로 되었음.

○ 가 남 굴 : 고리굴 윗쪽 골짜기.

○ 가 막 재 : 청천교에서 한내여중으로 통하는 산업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옛날에 이곳의 흙으로 점에서 그릇을 구웠다고 한다. 가막재 남쪽에는 많은 고린장(백제고분)이 있다. 가막재와 똥그란 산 사이 현재의 산업도로 바로 밑에는 일제시대에 쌓은 저수지 제방이 있었으나, 현재는 저수지를 폐지하고 제방도 없앴다.

○ 가 시 논 : 가장골 앞 점들에 있는 논으로 전설에 의하면 동학군이 관군에 쫓겨 모심는 사람 속으로 숨어 들었는데 다리에 감은 감발(천으로 종아리를 감는 것) 때문에 들켜 논에 가시가 많아 그랬다고 그랬다고 둘러대면서 관군을 논에 넘어뜨려 밟아 죽였다고 한다. 그래서 가시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 가 장 골 : 재가티 남쪽 골짜기이다.

○ 감나무골 : 무더미에서 안산쪽으로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감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 검 바 위 : 가남굴 위에 있는 바위로 의병이 모의하던 곳이다.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고 해서 금바위 또는 검바위로 불렸다고 한다.

○ 검 바 위 : 오얏골 서쪽 들가운데 있는 2개의 바위 고인돌이다.

○ 고 리 굴 : 오얏골과 소쟁이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옛날부터 정자나무에 고목제(古木祭)를 지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없어졌다가 요즈음에 다시 지낸다. 제일은 정월 보름이며 모든 집에서 걸립을 해서 지낸다. 과거에는 동네에서 제관을 뽑았으나 현재에는 동장, 문화원장이 제에 참석하여 동장이 초헌 한다. 음식은 생기복덕 닿는 사람이 장만하는데 3일 동안 목욕하고 음식을 만든다.

○ 국 구 개 : 꽃고개인데 음이 변하여 국구개로 불리운다고 한다. 이 곳은 청라면과의 접경이며 오래된 정자나무가 있다. 고개 오른쪽 마을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 마을은 한양 조씨의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는 고인돌이 3개 있으며 한양 조씨의 선조가 심었다는 소나무가 있다.

○ 귀 선 동 : 소쟁이골 끝, 뒷골 윗쪽의 골짜기. 날이 궂으려면 귀신이 지껄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금구데기 : 국구개 마을 뒤 쪽에 있는 금을 캐던 구덩이 일제시대 금을 캤었다고 한다.

○ 금구데기 : 소대박굴 위에 있는 일제시대 금을 캐던 구덩이이다.

○ 달랑고개 : 안터에서 청라면 향천리로 넘어가는 고개

○ 달 봉 재 : 큰골의 소마당굴에서 청라 향천리 구수골로 넘어가는 솟재봉과 소두산 사이로 난 고개. 소의 멍에 뒤에 있는 좀 높은 곳을 달봉이라 하는데 소두산을 소의 형국으로 볼 때 달봉에 해당되어 달봉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당 산 : 큰골 북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68.1m 이다.

○ 독 저 골 : 안터 입구 동쪽의 골짜기이다. 옛날에는 집이 몇 채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형국의 명당이 있는데 수리(매) 때문에 발복이 안 된다는 전설이 있다.

○ 동 구 재 : 고리굴에서 뒷굴을 거쳐 큰골로 넘어가는 고개.

○ 두꺼비 바위 : 안터 입구에 있는 두꺼비 처럼 생긴 바위이다.

○ 두 밤 논 : 안터 앞 들에 있는 논.

○ 뒷 골 : 고리굴 뒤, 소쟁이 윗쪽의 골짜기.

○ 똥그란산 : 고리굴 입구의 산. 모양이 동그랗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고리굴을 보호
하는 산이라고 한다.

○ 말 미 산 : 굴고개 서쪽에 있는 산. 끝이 아름다워 말미산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 무 더 미 : 큰골 앞 들

○ 미 럭 미 : 국구개 마을에서 안터로 들어가는 길가에 있는 조그만 산.

○ 배 바 위 : 국구개 서쪽 산의 중턱에 배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배바위라고 하며, 그 밑 마을도 배바위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곳까지 물이 들어와 이 바위에 배를 매어 놓았다고 한다.

○ 범 바 위 : 달랑고개 남쪽 산 허리에 있는 바위다. 정확하게는 청라면에 속해 있다. 편마암으로 된 큰 바위이며 밑에는 큰 구멍이 있어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동쪽으로 튀어나와 있어 달맞이 하기에 알맞은 바위로 안골 사람들이 자주 올라와서 놀던 바위이다. 이 바위 위쪽의 높은 봉우리에서 안터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 부 두 막 : 청룡재가 있는 언덕의 끝

○ 산소고랑 : 국구개 마을 뒤쪽에 있는 계곡. 한양 조씨 선조들의 묘가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 산 수 골 : 花峴(화현)(굴고개)에서 대천천 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이다. 山水洞(산수동)이라고도 하는데 산에서 물이 많이 나와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도 이 곳의 도로에는 아스팔트를 뚫고 물이 나오기도 한다. 이 곳에는 큰 고인돌이 1개가 있다.

○ 산 제 당 : 큰앵골의 성주산 기슭에 있다. 돌담으로 지어져 있으며 주변은 수백년 된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제일 큰 소나무 밑에 제단이 있고 이 곳에서 제를 지낸다. 물은 바로 옆 골짜기에 샘을 만들어 이용한다. 요즈음은 무당들이 기원장소로 이용하기도 한다.

○ 살구나무골 : 오얏굴 동쪽 골짜기. 지금도 살구나무가 있다.

○ 살푸쟁이 : 가막재 서쪽 대천천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곳에 큰 이무기가 살았는데, 이 곳을 지나던 대사(大師)가 농부의 살포를 빌려서 잡았다고 하여 살푸쟁이로 불리운다고 한다.

○ 살포 : 과거 지주계급이 들에 나갈 때 가지고 다니던 옹기구로 끝은 작은 삽처럼 생겼으며(15cm정도) 납작하였고 자루는 약 2m 정도로 길었다. 논의 물꼬를 보는 정도의 작업에만 쓸 수 있었으며 지팡이 대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 서낭댕이 : 고리굴 입구 산 밑에 있었으나 현재는 자취도 없다. 그러나 아직도 정월 보름에는 이곳에 제를 지내는 집이 있다.

○ 서낭댕이 : 점촌과 국구개 사이의 고개에 있다. 과거에는 동대동 쪽에서 청라쪽으로 통하는 큰길로 통행인이 많았다. 神樹(신수)는 참나무로 현재도 남아있으며 약간의 돌무더기가 남아 있다. 화산동에서는 가장 컸던 서낭이다.

○ 소대박굴 : 안터 동쪽 계곡이다. 이 곳에는 옛날 새끼 딸린 소가 있었는데 호랑이가 새끼를 물으려고 하자 어미소가 뒷다리 사이에 새끼를 넣고 싸워 호랑이르 물리쳤다는 전설이 있다.

○ 소두산(蘇頭山) : 화산동 뒤 성주산 줄기의 한 봉우리 355.0m 소머리 같다고 해서 소두산으로 불렸다. 邵頭山(소두산)이라 표기하기도 한다. 소두산 너머 청라면 향천리에는 구수굴이라는 지명이 있고, 산의 서쪽에는 소마당굴이라는 지명이 있어 소두산이 소와 관련되어 붙여진 지명이라는 것을 뒷받침 한다.

○ 소마당굴 : 큰골 뒤 소두산 밑의 골짜기이다. 소머리 밑에 있다고 해서 소마당굴이라고 부른다.

○ 소 쟁 이 : 고리굴 입구와 청룡재 사이의 마을이다.

○ 소정리(昭亭里) : 소쟁이의 한자 표기

○ 소죽은논 : 점들에 있는 논으로 소가 논을 갈다가 죽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소 태 논 : 안터 앞 들에 있는 논.

○ 솟 재 봉 : 큰골 동쪽의 봉우리이다. 성주산이 화산동쪽으로 돌출한 봉우리이다. 높이 211.1m

○ 수 리 재 : 증굴에서 청라면 향천리로 넘어가는 고개 높이 77.2m

○ 안 산 : 큰골 남쪽의 산 88.4m

○ 안 터 : 국구개와 큰골 사이의 마을이다. 한양 조씨 집성촌이며 진사 趙一元(조일원)선생이 살던 곳이다.

○ 앞산골 : 재가티 북쪽 골짜기이다.

○ 앞 산 : 점촌의 서쪽 배바위 앞쪽에 있는 산이다.

○ 양지것 : 오얏골 아래 지역을 말한다.

○ 오얏골 : 화산동의 제일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기와를 많이 구워서 瓦野(와야)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하여 오얏골이라 부른다는 전설이 있다. 이 마을에는 지금도 정월 초 2일에 산제를 지낸다.
몇 사람만이 참여하여 산제를 지내는데 모든 음식은 초저녁에 산에 가져가서 익혀 지낸다. 유교식의 祭(제)와 비슷하며 다른 점은 소지를 올린다는 점이다. 먼저 대동 소지를 올린 후 매 가구마다 소지를 올린다. 이 마을에는 과거 海南(해남) 金(김)씨네 큰 기와집이 있었다고 하고, 그 기와집에 있던 은행나무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고 전한다. 죽은 은행나무가 현재도 남아있다. 살아있다면 100세가 넘는 사람도 어렸을 때 현재처럼 죽어 있는 상태를 보았다고 하므로 죽은 지 100년도 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 옷 샘 : 안터 들 가운데 있던 샘으로 옻 올린 사람이 이 물로 씻으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

○ 왜솔밭 : 큰골 앞에 있는 솔밭. 리키다 소나무로 되어있어 왜솔밭으로 부른다.

○ 작은둠벙배미 : 국구개의 논이름으로 작은 둠벙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장어배미 : 미럭미 앞에 있는 논이다. 장어처럼 기다랗다고 해서 붙인 이름.

○ 재가티 : 앞산과 서낭댕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 절사래 : 고리굴 앞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논으로 과거 절 소유의 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 절터굴 : 고리굴 위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절이 있었다.

○ 절 터 : 절터굴에 있는 옛 절터로 석축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점 굴(店村) : 국구개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옹기 그릇을 굽던 점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店터가 남아 있으며 점집이라고 하는 점을 관리하던 집이 남아 있다. 이 집은 토담집이며 이 마을에는 아직까지 몇 채의 토담집이 남아 있다.

○ 점 들 : 점굴 앞 들.

○ 점행길 : 두러미에서 점을 이르는 길. 옛날에는 큰 길이었음.

○ 증 굴 : 안터 입구에서 동북쪽으로 난 골짜기.

○ 진등산 : 화산동과 동대동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산등성이가 길어서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 쪽다리 : 안터 입구에서 증굴로 통하는 곳에 있던 다리로 현재는 그 곳의 지명이 됨.

○ 질마배미 : 안터 앞 들에 있는 논.

○ 청룡앞들 : 청룡 앞에 있는 들.

○ 청룡재 : 소쟁이에서 큰골오 가는 고개.

○ 청 룡 : 큰골과 소쟁이 사이에 있는 당산 밑 언덕을 말한다. 큰골에서 보았을 때 左靑龍(좌청룡)에 해당되는 지형이므로 청룡이라 부른다.

○ 큰고랑 : 안터 북쪽 골짜기.

○ 큰 골 : 안터와 소쟁이 사이에 있는 화산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예부터 집이 많아서 큰골이라고 불렀다.

○ 큰둠벙배미 : 국구개의 논이름으로 큰 둠벙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큰앵골 : 오얏굴 남동쪽 골짜기로 산제당이 있다.

○ 탑골앞 : 고리굴 서낭댕이 앞에 있는 논으로, 절터굴에 절이 있을 때 탑이 이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 피난터 : 가남굴 꼭대기이다. 동학란 때 동학군이 낮에는 이 곳에서, 밤에는 마을 정자나무 밑에서 모여 서로 의논하고 연락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 함박골 : 소쟁이 밑. 우묵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 화산동 1통 1반 : 화산동 19-9, 20-5, 21-4, 422-2, 503-1, 504, 506, 511, 513-6, 513-12, 513-19, 519-24, 518, 521, 527-1, 553-4, 561-2, 564-1, 564-3, 600-4, 735-1, 744, 산19-5, 산19-7, 산22-1, 산25-1, 산25-3, 산26, 산26-3, 산28-3, 산30-3 일원

2반 : 화산동 422-1, 423, 425, 426, 427-2, 428-1, 430-2, 430-4, 430-5, 528-1, 528-3, 528-4, 529-1, 530-1, 530-4, 536, 537-1, 547-6, 547-8, 550-1, 550-2, 551-3, 552-5, 738, 738-2, 747, 산24-3 일원

3반 : 화산동 5, 6, 416-3, 458-2, 459-1, 459-2, 460-1, 460-2, 461-1, 461-3, 461-6, 469, 474, 475, 476-1, 478-1, 479-1, 499, 500, 732, 산37-1, 산39, 산40, 산41, 산42-1, 산43, 산60, 산108 일원

○ 화산동 2통 1반 : 화산동 7-1, 7-2, 9-1, 16, 17, 18, 21-1, 22, 31, 33, 33-2, 37, 38, 39, 40, 43-1, 44, 69, 70, 71-1, 78-1, 79, 80, 458-1, 461-1, 462-2, 466, 739, 산44, 산45-3, 산46, 산47, 산52, 산57-2, 산57-3, 산58-6, 산87, 산95 일원

2반 : 화산동 84-4, 86-6, 129, 133, 136-2, 147, 148, 150-2, 158, 334-1, 347-1, 348-7, 376, 376-1, 377-4, 380-19, 607-2, 610, 668, 산2-1, 산4-2, 산10-1, 산10-6, 산19-3, 산58-2, 산51, 산59, 산64, 산74-2, 산75, 산79-4, 산79-7, 산80-14, 산81-3 일원

3반 : 화산동 160, 162, 183, 189-2, 290-2, 290-3, 294-1, 303, 307, 308, 309, 321, 321-3, 321-4, 324, 325, 340-2, 348-1, 산83-2, 산84, 산85-2, 산86-2, 산87-1, 산89, 산90, 산91, 산92, 산93, 산96-1, 산97-1, 산100, 산101, 산102, 산189-4, 산296-1 일원

4반 : 화산동 105-1, 106-2, 192-1, 192-3, 193, 200, 201-2, 207, 208, 218, 219, 220, 227, 232, 234, 235-1, 238-3, 239-2, 249, 250-1, 254-2, 734, 산99, 산102, 산103-2, 산103-3, 산105-2, 산105-8, 산106-2, 산106-6, 산191, 산192 일원

5반 : 화산동 105-15, 105-17, 207, 235-1, 269-1, 588-2, 589, 593-2, 598-5, 616-1, 618-1, 618-2, 655-1, 662-2, 664-1, 669-1, 670-3, 676, 680-1, 680-2, 684-1, 700, 709, 710, 721, 산2-5, 산105-8 일원

6반 : 화산동 567, 573-2, 573-3, 588-2, 588-4, 588-9, 593-2, 594-2, 594-7, 595-1, 598-4, 599-1, 651-1, 657-2, 744, 산3, 산4-2, 산8-1, 산9-6, 산10-6, 산10-7, 산11, 산11-7, 산16-9, 산19-3 일원

○ 화현(花峴) : 국구개의 한자식 표현이다. 원래 국구개로 불렸으나 한자로 花峴(화현)이라 표기했기 때문에 요즈음은'화현'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1960년대 화산동을 花峴(화현)과 花山(화산)으로 나눌 때 부르던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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