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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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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말기는 홍주군 용천면의 지역인데 고종 광무 5년 (1901) 5월에 오천군에 편입되어 오천 북쪽에 자리해 있으므로 천북면(川北面)이라 하여 61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결성군 가산면의 6개리를 병합하여 다시 그대로 천북면이라 하고 8개리를 관할하는 면이다. 면내에는 김해김씨, 경주김씨, 경주정씨, 강릉유씨, 남양홍씨, 해주최씨, 전주최씨, 교하노씨, 밀양박씨의 집성마을이 있었다.

궁포리(弓浦理)

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주군에 속했었다. 1901년 오천군 천북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삽포동, 오만동, 삼궁리, 금파동, 온천동, 종지동 일부를 합병하여 천궁과 삽포의 이름을 따서 궁포리라 하였다. 밀양박씨의 집성마을이 있었다.

마을
마을 안내표로 금파동, 삭계, 오만이, 쇠편, 온천동, 천궁을 나열합니다.
금파동 (金坡洞) 천궁 남동쪽에 있는 마을을 금파동 이라고 부른다. 먼곳에서 바라보면 황금빛의 파도가 서린 것처럼 보이는 마을이라 금파동이라고 부른다 한다.
삭개 큰오만이 북서쪽에 있는 마을을 삭개, 삽포, 삽포동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나루터가 있었던 마을로 섭이 많이 쌓여져 있던 마을이라 삽포, 삽포리, 삽개가 변하여 삭개라고 부른다.
오만이 작은 오만이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다해서 오만 오만이 오만동(五晩洞)이라고 부른다.
쇠편 큰오만이 동남쪽에 있는 마을을 쇠편이라고 부른다.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이 있다는 마을이다.
온천동 (溫泉洞) 궁포리 서쪽에 있는 마을을 온천동이라고 부른다. 마을에 겨울에도 온화한 물이 흐르고 온천에서 나는 수초가 돋는 샘이 있으므로 온천동이라고 부르며 원적굴이라고도 부른다.
천궁 (川弓) 궁포리에 천궁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 지형이 마치 큰 활이 휘인 것 같은 형국에 그 사이로 물이 흐른다 해서 천궁이라고 부른다.
나루
  • 성원 나룻개

낙동리 (洛東里)

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주군의 지역으로서 낙동이라 하였었다. 고종 광무 5년(1901)에 오천군 천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낙서동, 학현동, 구동, 동막동, 당현동, 심박동, 본궁동, 송현동, 빙도동, 화곡동 일부와 결성군 가산면 점촌 일부를 병합하여 낙동리라 하였다. 경주김씨, 해주최씨, 전주최씨의 집성마을이 있었던 지역이다.

마을
낙동리 (洛東里)
날금점 洛西 마을 옆에 있는 마을을 날금점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금이 많이 나온 마을이라 날금점이라고 부른다.
당꼬지 동매기 서쪽에 자리한 마을을 당꼬지, 당구지, 당고개, 당현(堂峴)이라고 부른다. 마을 고개에 서낭당이 있으므로 그리 부른다.
동매기 당꼬지 동쪽에 있는 마을을 동매기 또는 동막, 동막리(東幕里)라고 부른다. 마을이 처음 생길 때 동쪽 산막부터 시작된 마을이라 한다.
본궁 (本宮) 당꼬지 남서쪽에 있는 마을을 본궁 이라고 부른다. 풍수설 에 따르면 본궁은 금소반에 해당하는데 그럼으로 금반형(金盤形)의 명당이 있다 해서 본궁이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빙섬 낙동리 남쪽에 있는 섬이다. 빙도(氷島), 미인도 라고도 부른다. 섬의 동쪽은 큰산, 서쪽은 작은산, 북쪽은 두산이 모여 이룬 언덕으로 둘러싸이고, 중앙에만 평지가 나타나는 섬이다. 일제시대 이전에는 미인도라고 표기하기도 하였다.
솔고개 심박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을 솔고개 또는 송현(松峴)이라고 부른다. 송현리라고도 부른다. 소나무숲이 있었으므로 그리 부른다.
수꾸지 서남쪽에 있는 마을을 수꾸지라고 부른다. 옛날에 숯을 굽던 사람이 처음 살았었다 하여 숯골이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수꾸지라고 부른다.
순박골 심박동(深朴洞)이라고도 부른다. 당꼬지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산에 둘러싸여서 깊은 숲속을 너무 마을이 자리하였으므로 심박동, 심박골이라고 부른다.
화곡동 (禾谷洞) 텃골, 화곡이라고도 부른다. 천북면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통한다. 일찍 마을이 생겼다 하여 텃골 베가 잘 되는 마을이라 화곡, 화곡리라고 부른다.
  • 남산, 진당산

사호리 (沙湖里)

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주군의 지역이였으나, 고종 광무 5년에 오천군 천북면에 편입되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사정동, 상판동, 하판동, 열호동, 명포동, 통포동, 사기점동, 봉상동, 하선동을 병합하여 사정과 열호의 이름을 따서 사호동이라 하였다. 경주정씨의 집성마을이 있었던 지역이다.

마을
사호리 (沙湖里)
구샛골 통개 동쪽에 있는 마을을 구샛골이라고 부른다. 옛날 마을이 생길 때 한편 구석진 곳에 처음 있었으므로 구샛골이라고 부른다.
늘문이 판문, 늘문, 판문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지형이 널문처럼 생겼다 해서 그리 부른다.
사쟁이 늘문이 서남쪽에 있는 마을을 사쟁이라고 부른다. 사정이, 사정리(沙汀里)라고도 부른다. 마을에 모래가 많으므로 사정이, 사정리가 변하여 사쟁이라고도 부른다.
선학골 통개 동남쪽에 있는 마을을 선학골이라고 부른다. 또한 선학동, 서낙굴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지형이 마치 신선이 학을 타고 노는 형국이라 그리 부른다 한다.
열문이 열호, 열호동(烈湖洞)이라고도 부른다. 통개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천수만이 환히 열려있으므로 열문이 또는 열호, 열호동이라고 부른다.
통개 절골 서쪽에 있는 마을을 통개라고 부른다. 또한 통포, 통포리 라고도 부른다. 마을 지형이 마치 통(桶)처럼 생긴 갯가의 마을이다.
짓개 통개 서쪽에 자리한 마을을 짓개 또는 집개, 집포(集浦)라고 부른다. 육지에서 흐르는 물이 서쪽으로 흘러서 합수하는 하구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여러 갯물도 이곳으로 집수함으로 집포, 집개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짓개라고도 부른다.
산, 고개
  • 봉화산, 늘문이고개

신죽리 (新竹里)

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주군의 지역이였으나, 고종 광무 5년에 오천군 천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천포동, 구봉동, 죽현리, 농현리, 신촌과, 웅천동, 언내동의 각 일부와 결성군 가산면의 죽현리, 농현리, 염리, 신리, 마촌을 병합하여 신촌과 죽현의 이름을 따서 신죽리라 하였다.

마을
신죽리 (新竹里)
농고개 농현(農峴), 농현리라고도 부른다. 댓고개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는 논이 많으며 옛날부터 농부들이 두레 등을 통한 협동농업을 하는 마을로 소문난 마을이다.
댓고개 농고개 동남쪽에 자리한 마을을 댓고개 또는 죽현, 죽현리라고 부른다. 마을과 그 주변에 대나무가 많으므로 댓고개, 죽현, 죽현리라고 부른다.
말마리 댓고개 서남쪽에 있는 마을을 말마리 또는 마촌(馬村이)라고 부른다. 옛날에 말을 먹인 마장이 있었으므로 그 때부터 마장으로 부르다 말마리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청기(淸基) 댓고개 북쪽에 있는 마을을 청기라고 부른다. 천북면과 은하면의 경계를 이루는 마을이다. 마을 산마루 양기슭에 맑은 물이 흐르므로 청기 라고 부른다.

신덕리 (新德里)

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주군의 지역이였으나, 고종 광무 5년에 오천군 천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상신리, 하신리, 명곡동, 수곡동, 소덕동과 웅천동, 덕두리, 언내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상신과 덕두의 이름을 따서 신덕리라 하였다. 강릉유씨 50여호의 집성마을이 있었다.

마을
신덕리 (新德里)
곰내 원덕 남쪽에 있는 마을을 곰내라고 부른다. 또한 웅천(熊川), 웅천동 이라고도 부른다. 천북면에서 가장 큰 냇물 곰내가에 마을이 있으므로 그리 부른다.
덕머리 소덕 동북쪽에 있는 마을을 덕머리, 덕두(德頭), 덕두리라고 부른다. 마을 뒷산의 모양이 꼭 멍덕을 씌운 모양같다 하여 그리 부른다.
등건말 덕머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을 등건말이라고 부른다.
원안 언내동(堰內洞)이라고도 부른다. 원안쪽에 마을이 있으므로 원안, 언내동이라고 부른다.
골, 고개, 내
  • 통새암골, 각시바위고개, 신덕내

장은리(長隱里)

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주군의 지역이였으나, 고종 광무 5년에 오천군 천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은포리, 수철리, 매향동, 봉하동, 밀포동, 아포리, 어망동, 종리동 일부를 병합하여 장은리라 하였다. 교하노씨 40여호의 집성마을이 있었다.

마을
장은리(長隱里)
동위점 종지동(宗芝洞)이라고도 부른다. 옛날에 동이를 만드는 집이 있어서 동위점, 종지동이라고 불렀다. 진구지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맹이 진구지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 매화가 땅에 떨어진 매화락지형(梅花落地形)의 명당이 있다 해서 매향리(梅香里)라고 부르고 또한 매조, 맹이라고도 부르는 마을이다.
수문개 진구지 서북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은포, 은포동(隱浦洞) 이라고도 부른다. 갯가에 있는 마을인데 산이 둘러싸서 마을이 숨은 것처럼 되어있다 해서 ,은포, 은포동, 수문개라고 부른다.
밀파실 밀포(密浦), 밀파동 이라고도 부른다. 진구지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밀물때는 호수가 이 마을 앞을 밀어 들어오는 마을이다.
아포동 (牙浦洞) 밀파실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지형이 앞니처럼 개를 향하여 생겼다 해서 아포동 이라고 부른다. 옛날엔 아지포(牙之浦) 였다고 함.
어서리 어망동(漁網洞) 이라고도 부른다. 사리를 많이 매는 마을로 앞바다에서 고기를 많이 잡는 마을이다.
진구지 무쇠점 남쪽에 있는 마을을 진구지 또는 장곶, 장곶리라고 부른다. 마을이 긴 곳으로 되어 있는 마을이다.

하만리 (河滿里)

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주군의 지역이였으나, 고종 광무 5년에 오천군 천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하궁리, 종평동, 동산동, 동음동, 두만동, 원동, 화곡동 일부를 병합하여 하궁(河宮)과 두만(斗滿)의 이름을 따서 하만리라 하였다. 경주김씨, 남양홍씨의 집성마을이 있었다.

마을
하만리 (河滿里)
고만굴 동음동 남쪽에 있는 마을을 고만굴, 또는 두만동 이라고 부른다. 마을 뒤쪽으로 놓은 산이 둘러있으므로 그리 부른다.
능재 하궁(河宮)에서 낙동리 당꾸지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능치(陵峙)라고도 부른다. 능무고개는 능(陵)이 있다고 전해오는 고개이다.
담안 종평 서쪽으로 옆에 있는 마을을 담안이라고 부른다. 옛날에 큰 집이 있었는데 그 집 담 안쪽에 마을이 생겼으므로 담안이라고 부른다.
동음 (冬音) 동음동이라고도 부른다. 주항동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학이 고기를 물고 있는 지세라 한다. 노학수어형(老鶴守魚形)의 명당이 있다는 마을로 옛날부터 부촌(富村)으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두룸개 동음동 동쪽에 있는 마을을 두룸개라고 부른다. 또한 학포(鶴浦)라고도 부른다.
종평 (宗坪) 하궁 남쪽에 있는 들에 자리한 마을이다. 종평동 또는 마룻들이라고도 부른다. 두 냇물이 합해지는 곳에 큰 들을 끼고 있는 마을이라 종평, 종평리, 마룻들이라고 부른다.
세집매 동산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삼가천(三家川)이라고도 부른다. 바닷가에 있는 마을로 어촌을 이루는 세 집이 있는 마을이라 세집매라고 부른다.
원둣골 동산 서쪽에 있는 마을을 원둣골이라고 부른다. 마을 뒷산의 모양이 둥근머리형을 하고 있다해서 원둣골이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하궁 (河宮) 마룻들 북쪽에 있는 마을을 하궁 또는 하궁동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제 14대 선조의 생가 아우인 하원군의 궁이 있었던 마을이라 하궁 또는 하궁동이라고 부른다.
골, 고개, 산
  • 박죽골, 수랑치기, 시름장굴, 작골, 능무고개, 당재, 맹이고개, 큰대봉

학성리 (鶴城里)

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주군의 지역이였으나, 고종 광무 5년에 오천군 천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염성리, 중랑리, 오학동, 오룡동, 혜마동, 호변동, 율도동을 병합하여 오학과 염성의 이름을 따서 학성리라 하였다. 김해김씨, 경주정씨의 집성마을이 있었다.

마을
학성리 (鶴城里)
면화밭골 저뜨기 북쪽에 있는 마을을 면화발골이라고 부른다. 옛날에 목화밭이 많았던 마을이다.
밤섬 율도(栗島)라고도 부른다. 갓뚝을 쌓아서 연육된 섬이다. 율도동이라고도 부르는데 밤처럼 생긴 섬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육지가 됨.
염성 (鹽城) 염성리라고도 부른다. 염밭이 있어서 소금을 성처럼 싸놓는 마을이라 염성 또는 염성리라고 부른다.
오룡동 (五龍洞) 중랑골 남쪽에 있는 마을을 오룡동이라고 부른다. 마을 지형이 다섯 용(龍)이 다투는 형국이라해서 오룡동 이라고 부른다.
저뜨기 오룡동 남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저뜨기 라고 부른다. 오천의 밖에서 새우젓 어리굴젓 등을 도산매하던 마을이라 젓뜨기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저뜨기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오랑캐골 호동(胡洞)이라고도 부르다. 저뜨기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부터 중국사람들이 서해안에서 조난을 당하면 여기에 모여 살며 고기잡이를 하였었다. 우리나라 사람 아닌 다른나라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라 오랑캐골 또는 호동이라고 부른다.
회변 호변동(湖邊洞)이라고도 부른다. 저뜨기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천수만에서 광천으로 들어가는 해로 첫 번째 모래사장에 조성된 마을이다. 백사장 모래가 유리알처럼 고으며 마치 호반과 같은 물을 끼고 있는 마을이라 호변동 또는 변해서 회변이라고도 부른다.
담당부서 :
천북면
담당자 :
김미진
연락처 :
041-930-4654
최종수정일 :
2019-05-3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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